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릭 캐로스 (문단 편집) == 선수 시절 == 198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LA 다저스]]에 6라운드에 지명받아 프로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199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 14타수 1안타를 치며 메이저의 높은 벽을 실감했으나, 이듬해인 1992년에 타율 .257에 20홈런 88타점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등극한다. 그리고 캐로스를 시작으로 이후 LA 다저스는 [[마이크 피아자]], [[라울 몬데시]], [[노모 히데오]], [[토드 홀랜스워스]] 등 5년 연속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배출한다. 이후 캐로스는 1995년 32홈런 105타점으로 내셔널리그 1루수 실버슬러거상을 수상하는 등 다저스의 주축 타자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통산타율 .268이 말해주듯 정확도가 떨어지는 타자였고, 타석에서의 집중력도 부족해 결정적인 한 방을 쳐주는 선수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선구안이 좋느냐면 그게 아니라서 통산 출루율도 .325에 불과했다. '''[[공갈포|즉 홈런과 타점 수에 비하면 절대 믿을 수 있는 중심 타자가 아니었다.]]''' 경기 내적으로도 [[박찬호]]의 선발 등판 경기 때마다 득점권에서 범타라든지 평범한 1루 팝업을 놓친다던지 같은 삽질을 많이 해서 한국 팬들을 가슴치게 만들었다. 이 때 붙은 별명이 '''개로스'''(…).[* 특히 LA 다저스에서 입지가 갈수록 좁아졌던 2000년대 초반에는 박찬호가 등판할 때나 1루수로 나왔고 보통은 [[폴 로두카]]가 1루를 보는 일이 허다했다. 이후 엎친데 덮친격으로 [[숀 그린]]이 1루수로 가끔 나오면서 1루수로서의 효용성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나마 98, 99 시즌에 타율을 끌어올려서 성적이 나오자 캐로스에게 덜컥 장기계약을 맺는 바람에 LA 다저스는 당시 토드 워렐 이후 마무리 부재로 [[신시내티 레즈]]에서 [[제프 쇼]]를 얻기 위해 특급 우타 거포 1루수 유망주를 트레이드 카드로 써버렸는데, 그 유망주는 다름아닌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영구결번 [[폴 코너코]].[* 다만 코너코의 경우 원래 포수였다가 3루수와 1루수를 겸업하는 형태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이 당시 3루에도 [[아드리안 벨트레]]가 등장하는 바람에 붕 떠버린 상황이었다.] 2003년 정든 LA 다저스를 떠나 [[시카고 컵스]]로 이적, 12홈런 40타점을 기록하며 베테랑으로써 자기 몫을 해 준다. 다만 당시 컵스의 최고 유망주였던 [[최희섭]]이 캐로스 때문에 출장기회를 제대로 부여받지 못했기에, 여전히 한국 팬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2004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했으나, 0.194라는 최악의 타율을 기록. 결국 그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